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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진예
  154차 철암그리기 후기
  

밤 23시 6분 인천-태백 버스는 태백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 입구에 이종미작가가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 말로는 23시에 철암행 막차가 금방 출발했단다. 간발의 차이를 아쉬워하며 택시승강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굵어지는 눈발과 모처럼의 눈발을 반기는 태백주민들의 속삭임이 언뜻 들려온다. 택시기사분 말로는 겨울에도 이처럼 눈이 쌓이지는 않았단다. 어둠 속, 거세어진 눈발이 택시 앞창을 뚫고 들어올 기세다. 미끄러질듯 조심스럽게 통리재를 넘어 간다. 기사분은 한 겨울에 사용한 스노우타이어가 이제 닳았고 여름용으로 교체해야할 시기라고 말씀하신다. 스노우타이어가 닳아서 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되네이신다.

다행히 철암으로 들어선다. 삼방교 근처 불꺼진 편의점을 아쉬워하며 이미 도착한 심현섭선생을 빈손으로 맞이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른 편의점을 찾아볼까 하다가 세상이 온통 어둠과 흰 눈으로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상황에서 가게를 찾겠다는 의욕이 사라지고 겨우 삼방동 센터에 도착한다. 

심선생에게 전화를 거니 주무시는듯하다. 밤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잠을 청하는게 낫겠다 싶어 안방에 들어서서 물티슈로 바닥을 닦고 침낭을 펼치고 누웠다.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심선생은 밤 9시에 혼자 삼방동에 도착해서 통장님께 열쇠를 건네받았다. 그러나, 현관문 열쇠가 없어 우여곡절끝에 삼방교까지 내려와 김동현선생을 만나 열쇠를 또 받아 들고 겨우 삼방동 센터로 들어와 잠을 청했으리라. 철암그리기 신고식 치고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이 이어져서 초대한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새벽 1시가 넘어 아직 도착하지 못한 정채희 선생께 전화를 드렸다. 정선에서 같이 오던 이이정은작가 차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과 한숨소리, 그 이후로 새벽 2시가 넘어 경찰서에 왔다는 연락 그리고 새벽 4시에 대문이 흔들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채희, 이이정은 작가가 깊은 눈을 뚫고 센터로 들어왔다.  안도의 마음으로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뜨거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8시 반이 되어 이이정은작가는 불지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철암의 난방시스템을 칭찬해줬다. 바닥의 온도가 찜질방처럼 몸을 감싸줘서 감사하다. 몸을 일으켜 철암역으로 향했다. 겨울 대비로 상하수도를 잠가놔서인지 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부지런히 철암역 화장실에서 고양이세수를 하고 어제 내린 새하얀 눈이 선탄장을 덮고 마을을 덮고 길가를 덮은 신기한 풍경을 감탄했다. 아침에 만난 심선생이 오른판에 기브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심선생은 우스개 소리로 ' 누가보면 (내가)철암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겠다' .  

오전 10시경 이태량선생이 철암역에서 시청직원과 미팅이 있다는 통화를 했고 미팅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때마침 손유선작가가 밝은 인사로 센터로 들어온다. 특유의 밝음으로 시선을 모아 분위기가 즐거워진다. 한 점 갤러리 전시를 위해 어젯밤에 작품을 가지고 온 이이정은 작가는 물감을 챙겨와 작업되어진 캔버스에 덧칠을 하고 그림을 건다. 짙은 녹색빛에 유화의 질감이 듬뿍 느껴지는 야생적인 느낌의 그림. 이이정은 작가는 한강의 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오픈에는 6명의 작가가 모였고 그 동안의 고적한 한 점 갤러리 전시오픈에 비해 굉장히 풍성하다며 운이 좋은 이이정은 작가를 축하해주었다. 

오전 11시경 다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예전 철암시장 부근에 새로 조성된 바우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약속한 김동현 선생은 철암역 카페일이 바빠 참석하지 못했다. 미팅이 끝난 이태량 선생이 동석하여 일곱분이 모여 태백에서 맛있다는 고갈비,갈치조림,두부조림을 2인분씩 시키고 곤드레 나물밥도 주문했다. 맛있다며 밥도 추가했다. 철암그리기는 이렇게 와서 사람들과 밥먹고 이야기하다가 개인작업하는게 다지. 라고 누군가 말씀하셨던것 같다. 식사를 끝내고 철암역 카페에서 김동현 선생과 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커피를 시켜 들고 수수부꾸미와 감자만두를 입에 넣으며 만족해한다.  어젯밤 일로 감사인사라도 하듯 김동현선생과 심선생이 웃으며 눈인사를 나눈다. 

오후 12시경 삼방동센터로 돌아와 그 동안 밀린 이야기를 꺼내 풀어놓는다. 


먼저, 


마지막 발간된 2017년 철암그리기 백서를 정채희 선생께서 가져오셨다. 내가 편집을 했지만 처음 손에 들었다. 벌써 제작년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작년에는 철암그리기백서가 없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으리라. 정채희 선생은 작년과 올해를 묶어 올해 백서를 발간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주셨다. 올해 백서에는 2018년 심현섭 선생이 쓰신 할아텍과 철암그리기 논문을 실어도 되겠는지를 심선생께 여쭸고 허락을 받았다. 백서발간을 위해서 기금마련을 해야하니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철암그리기 연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철암그리기는 한 사람이든 둘이든 오기만 하면 그리기가 된다. 그 동안 삼방동센터 관리 차원에서도 정채희선생이 꾸준히 두 달에 한번꼴로 철암을 다녀가셨고 그때마다 한 점 갤러리 전시가 채워졌다. 

그러면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은 없을까. 이태량 선생은 모일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이 흐르고 누군가 바빠지고 혹은 누군가 다른일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오고싶어도 여력이 안되고 서로 다른 사정들이 있다는것을 잘 안다. 정채희 선생은 이제는 누군가의 구심점이 아니라 스스로 서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서로들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일이라는것은 누군가 일으켜야 돌아간다. 일을 추진하고 그것을 따르고 만들어가고 정리하는 퍼즐이 맞춰지지 않으면 바퀴는 움직이지 않는다. 선배들이 나서서 일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부터 딱히 일을 만들지 않아도 늘 그렇듯 철암그리기는 개인의 작업을 바탕으로 하기에 작업하러 오면 되지 않느냐는 말. 그러기에는 철암으로 오는 경비가 가족을 위한 하루 여가비여서 부담이 된다는 말. 그 부담을 예전처럼 기금조성을 하거나 혹은 사업추진비로 만들어주면 철암에 누가 오지 않겠느냐는 말들. 고민이 깊어가지만 역시나 누군가 나서주지 않으면 방법은 없다. 작가는 작업하는 사람이지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좀 더 다른 영역같다라는 말도 있었다. 

 철암그리기 삼방동센터 임대기간은 2019년 11월 30일까지이다. 올 해 초 갑작스러운 집주인의 퇴거통보를 받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임대계약은 했으나 집주인은 재건축을 위해 퇴거통보를 했다. 결국 일방적으로 잠가놓았던 대문열쇠는 통장님의 설득으로 돌려받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남아있다. 

철암그리기는 2002년 설립되었지만, 작가거주공간을 갖게 된 것은 2016년 11월 30일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기금으로 처음 철암에 거주공간을 임차하게 되었다. 3년 임대기간, 월 33,000원 정도. 일시금 백만원 지급. 정채희 선생은 어렵게 마련한 거주공간의 쓰임이 거의 없다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셨다.  계약된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것인가. 물건을 정리하면 된다. 물건이랄것도 많지 않다. 몇 권의 서적들과 물감, 스케치북, 침낭정도. 단촐하다. 

정말 그 뿐일까. 


그러던 중 정채희 선생은 올해 3월 말경 양평에 있는 갤러리소밥이 철수해야한단다. 이미 갤러리소밥은 문을 닫았지만, 아직 짐들이 공간에 남아있다. 건물주인은 그 곳을 철거하고 집을 짓겠다고 모든 짐을 치워달라고 했다. 갤러리 소밥에 있던 짐들은 어디로 가나. 작가의 전시도록과 행정문서들, 아직 미처 가져가지 않은 어느 작가의 그림, 그리고 생활용품들. 그리고 유광운 선생의 작업도구들. 3월 말경 소밥철수할때 연락할테니 도와주고 식사하자고 하신다.  3월 말. 그리고 그 공간도 사라진다. 

나는 갤러리를 만드는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이제는 할아텍이라는 이름으로 할아텍으로 모여있는 30여명의 작가들을 소속작가로 하고 갤러리도 열고 아트페어도 가자고 호기롭게 외쳤다. 이태량선생은 서울 세운상가에서 이은경작가가 작가3명과 함께 갤러리를 열었는데 임대료가 저렴하다며 그런 곳도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손유선작가는 광명에 있는 반지하가 월 20만원도 한다고 했다. 최근 할아텍 갤러리를 정릉에 알아보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도 한다. 모일수만 있으면 어디든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며 오랜만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우리의 처지가 왜 나는 애틋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괜한 나의 감상이겠지. 


이태량 선생이 시청 문화관광과 직원과 미팅한 이야기를 한다. 문화관광과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현재 철암역 벽화가 노후화되어있고 누군가 일방적으로 벽화에 설치물을 얹어 설치물제거와 노후화보수작업이 필요하다며 계획서를 요청했단다. 벽화보수작업은 현재 전시되고 있는 작가들의 동의가 필요하니 해당작가들과 논의자리를 마련해야할것 같다. 아직 결과가 뚜렷하지 않아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오후 2시가 다가오고 이종미 작가는 이태량선생과 터미널로 먼저 떠나고 나머지 일행은 삼방동센터를 정리하고 철암성당으로 향했다. 작년에 철암성당 14처 보수작업을 정채희 선생과 유광운선생이 맡아주셨다고 한다. 1960년대 제작된 14처의 부조가 깔끔하고 선명해보인다. 윤영희 선생이 오래 부탁하셨던 내용인데 작년에 해결되었다니 무척 반가웠다. 철암을 나오는길에 이동환통장님께 연락을 드렸으나 외부에 계셔서 못뵈어 아쉬웠다. 통장님 드리려고 정채희선생께서 준비해온 과일을 받아주십사하고 삼방동센터 벤치에 올려두고 나왔다. 

오후 3시경 이이정은 작가의 차를 타고 구와우로 이동. 오랜만의 구와우는 무척 정겹다. 부드러운 구와우 능선이 하얀 눈에 덮여 포근하게 다가왔고 햇살이 반짝이는 풍경은 따스했고 칼칼한 바람으로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다. 홍제훈 대표와 만나 오래 묵은 담소를 나눈다. 내년에는 얼음축제를 해보겠다며 얼음을 제대로 얼리는 방법을 설명하시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쉽지 않은 작업에 꽤 공을 들이시는 듯했다. 구와우에 있던 말도 관리가 까다로와 다시 대구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며, 현재 있는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구와우 입구쪽에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질 거고 그러면 현재의 구와우의 풍경이 더 드러나지 않겠냐는 이야기. 이제 곧 해바라기 씨를 심을 거고 4월이 넘어가면 야생두릅 등 온갖 자연에서 얻은 식물들이 식탁을 풍성하게 할 거라는 이야기. 얼굴이 더 검어지신 홍제훈 대표의 입담을 들으며 이태량 선생이 사오신 시원한 맥주를 한 잔했다. 그렇게 오후나절을 즐기다 5시가 넘어 맛있는 닭갈비집에 가자는 홍제훈대표의 앞장으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일일이 누른 볶은밥을 긁어주시는 인정많으신 주인할머니. 기브스를 벗고 두 팔로 드시는 심선생님. 닭고기보다 탄수화물이 좋다고 연신 우동을 드시는 손작가님. 닭고기를 안먹는 나도 질세라 우동에만 젓가락을 넣고 옆 테이블 우동까지 받아먹었다. 남은 볶은밥을 싸달라며 맛있다고 하는 이이정은 작가님. 이 근처에 코다리식당도 있는데 정말 맛있고 푸짐하다며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신 홍제훈 대표님. 대표님에게 발이 묶여 서울귀가를 미룬 이태량 선생님. 모두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154차 철암그리기. 


늘 철암그리기 일정을 올리며 아무도 가지 않는 철암그리기 일정을 올리는 내 손이 민망했고 어색했다. 다른 선생님은 그래도 끝나지 않았으니 올려야 한다고 했고 그 사이 어느 작가는 그림 한 점을 걸기위해 철암으로 갔다. 어느 작가는 말없이 철암에 스윽 다녀가기도 했다. 모처럼의 만남이 한없이 반가웠고 왜 자주 못만나나를 아쉬워했고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철암 삼방동 맞은편 안씨상회 건물은 역시나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몇 개의 어색한 조형물 두개와 세 점의 벽화가 그려 있었다. 세 번의 공모까지 참여했지만 결국 행정적인 서류미달이라는 이유로 실격되었고, 마지막 공모는 누가 되든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문화관광과의 터무니 없는 결론으로 당선된 누군가의 조형물이 설치됐지만, 나는 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흔적은 오래 남는다. 그 흔적은 그 자리에 오래 누군가의 기억에 박힌다. 마을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흔적들 하나하나가 마을을 이룬다. 결국 잘못된 문화행정으로 마을은 엉뚱해지고 정체성을 잃어가고 고귀한 마을의 향기를 잃게 된다. 문화예술은 규범적으로 만든 장치에 걸러내는 예술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표현된 예술을 보는 심미안으로 심사숙고하여 마을의 흔적으로 남아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든다. 


1년여만에 철암그리기 후기를 적어봅니다. 

다음 철암그리기도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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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하기] 2019-03-20 1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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